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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발적인 행위 예술가, 뱅크시 Banksy

some wind 2018. 12. 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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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치른 후 고사장을 빠져나오는 학생들

2017년 수학능력시험이 끝이 났다. 수험생들은 이제 자유다. 곧 받게 될 졸업장과 함께 12년 동안이나 획일화된 교육을 받으며 학교에 갇혀 있던 수험생들은 더이상 교복이라는 유니폼과 고정된 학교 시간표에 얽메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생각만큼 속이 시원하지는 않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긴 날을 달려온 걸까? 이제 수능이 끝났으니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준비하고, 적당한 나이가 되었으니 결혼을 하는 정해진 수순을 밟을 일만 남은 걸까? 결혼 할 나이가 되었으니 더 늦기 전에 결혼을 해야하고, 공무원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말들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다. 이런 틀은 누가 만든 것일까? 우리는 어떤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뱅크시 홈페이지( www.banksy.co.uk )에 있는 뱅크시의 사진

이런 의문들에 대해 아주 과감하고 도발적으로 자신의 메세지를 표현하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뱅크시(Banksy)다.

 

“누군가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좋아보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의 테러리스트가 된다."

 

뱅크시는 자신을 아트 테러리스트라 칭한다. 미술관도, 갤러리도, 캔버스 위도 아닌 유럽 곳곳의 담벼락에 예고없이 불쑥 등장하는 뱅크시의 풍자적인 그림들은 조용한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작은 테러를 연상시킨다. 물론 길거리나 공공장소에 스프레이나 페인트를 이용한 낙서 예술인 그라피티(Graffiti)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범법 행위이므로 당국 경찰들에게는 정말 골머리를 앓는 테러의 일종일 것이다.

 

뱅크시는 “Graffiti is a Crime”이라고 적힌 표지판 속의 스프레이를 이용해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자기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고 칭하는 자 답게 그의 신원은 꽁꽁 숨겨져 있다. 뱅크시의 그림들은 주로 스탠실 기법(stencil : 그림이나 글자 등의 모양판을 만들어 잉크나 물감 등을 찍어내는 기법)으로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완성되며, 스프레이가 채 마르기도 전에 작가는 사라져 버린다. 경찰과 시민들의 눈을 피해 순식간에 작품을 완성하고 떠나는 뱅크시가 남긴 Banksy라는 싸인으로 그의 가명을 알 수 있을 뿐, 우리는 그의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다. 

 

 

 

뱅크시의 그라피티 작품들

거리에 그려진 뱅크시의 그림들은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사실적인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이 등장하고 쥐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벽화 같지만 가까이서 한 번 더 들여다 보면 기존의 상식과 다른 새로운 이미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복을 입은 사람이 수색을 당하고 있는가 하면, 안고 있는 연인은 서로가 아닌 각자의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전쟁을 의미하는 전투기는 핑크색 리본을 달고 있고, 아이 병사의 기관총은 크레용으로 장전되어 있다.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그림들은 담벼락의 균열이나 틈새를 비집고 자라난 식물들과 어우러져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가끔은 냉소적으로 가끔은 희망적으로 보이는 뱅크시의 그림들은 길거리에서 발견되며 사람들에게 서프라이즈하고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지만 흑백의 강한 대비로 이루어진 표현 만큼 자본주의, 전쟁, 종교, 현대 사회에 대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키스해링과 그의 벽화
장 미셸 바스키아

 

그라피티로 통칭되는 낙서 예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로는 키스 해링(Keith Haring)과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가 있다. 키스 해링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굵고 진한 선의 캐릭터와 강렬한 원색들로 사랑과 죽음, 동성애와 에이즈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며 길거리를 밝게 물들였다. 바스키아는 낙서 같은 텍스트와 왕관 이미지가 결합된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독특한 화법으로 미국 예술계를 사로 잡았다. 

 

이들은 대중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으며 길거리 낙서 예술인 그라피티를 대중화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고, 세계적인 예술가로 거듭났다. 그들의 작품은 현재 아주 높은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미술관에서도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그의 익명성과 거침없는 솔직한 그림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일까? 뱅크시 역시 대중들에게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예술 작품 경매에서도 뱅크시의 벽화가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배우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와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또한 20억 원과 같은 아주 고가로 그의 그림을 구입했다. 뱅크시의 그림이 그려진 담벼락은 강화유리로 덧대어 보호되고, 지역사회와 건물 주인 간의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거리의 좌판대에서 팔리고 있는 뱅크시의 그림들

뱅크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을 하려는 의도와 달리 자신의 그림이 비싸게 팔리며 다시금 대중들을 소외시키는 미술시장을 보며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거리의 좌판대에 자신이 싸인을 한 원작 그림들을 걸어두고 한 노인을 고용해 단돈 60달러에 판매하도록 한 것이다. 하루종일 그림은 단 8점만이 팔렸고 매출액은 420달러였다. 뱅크시 작품의 최고가인 140만 달러(약 16억 원)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작은 액수이다. 

 

사람들이 과연 자신의 그림을 보며 예술을 즐기기 위해 구매하는 것인지 미술시장의 상업적인 구조에 따라 비싼 금액으로 판매되는 그림을 투자의 일환으로 구매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게 한다. 뱅크시는 이러한 판매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굳이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행동을 하고, 보여줄 뿐이다. 

 

작품을 몰래 설치하는 뱅크시와 방독면 쓴 여인의 초상화
Tesco 수프 캔
원시인 마트에 가다(Early man goes to market)

뱅크시의 행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뱅크시는 여러 미술관들을 습격하여 자신이 패러디한 작품들을 몰래 전시하기도 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방독면 쓴 여인의 초상화를, MoMA에서는 앤디워홀의 캠벨 수프캔을 패러디한 Tesco(영국의 할인 마트)수프 캔을,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전쟁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는 딱정벌레를 걸고 캡션을 붙였다. 

 

런던에서는 대영 박물관의 로마시대 전시실 벽에 다른 유물들과 비슷해 보이는 돌을 붙여두기도 했다. ‘원시인 마트에 가다(Early man goes to market)’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 돌 위에는 쇼핑카트를 밀며 사냥감으로 다가가는 원시인을 직접 마커로 그려두었다. 뱅크시는 이 습격을 위해 모자와 수염으로 변장을 했다. 단순한 변장과 접착풀로 이루어진 이 습격은 미술관 관리인들의 눈을 피해 어렵지 않게 시도되었다. 

“우리가 보는 미술 작품은 단지 소수의 선택되어진 화가들의 작품일 뿐이다.
갤러리에 간 당신은 단지 백만장자들의 장식장을 구경하는 관람객에 불과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MoMA에서는 뱅크시의 그림을 금세 발견하고 철거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무려 12일 동안이나 들키지 않았다. 대영박물관은 그 ‘돌’을 박물관에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하였고, 뱅크시는 영국의 국가주도 현대미술 정책인 터너 상(Turner Prize)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뱅크시는 뉴욕의 현대미술을 다루는 미술관들에서 선택되지 않은 예술을 인정하지 않는 권위적인 모습과 작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박물관의 무지, 자신의 돌발적인 행동을 또 하나의 전략으로 사용하는 모습 등 다양한 예술 세계의 군상을 관찰했다.

 

직접 그린 자신의 작품을 이용하긴 했지만 뱅크시의 예술은 단순히 그림 뿐만 아니라 ‘판매’와 ‘습격’ 같은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해프닝적인 행위들은 아주 직접적이고 도발적이다. 1950년대에 등장한 작품보다 작가의 실행을 중요시하는 현대 예술 해프닝(Happening)은 일시적이며 순간적인 행위의 예술이다. 그 순간 관객들은 단순히 관람자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뱅크시가 습격한 미술관의 관람객들도 뱅크시의 작품을 보고 혼돈을 느꼈고 반응했다. 물론 거리의 그림들도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 장벽에 그린 그림들

 

철학자 니체는 인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힘(권력)에의 의지로 세계의 절대적인 가치관에 얽메이지 않는 인간의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가치로서의 아름다움은 니체의 입장에서는 허구다. 끊임없는 가치의 전도로 창조적인 예술을 통해 보편화, 형식화 되어있는 기존의 왜소한 예술에서 탈피해 긍정적 예술로 변모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뱅크시는 “이 세계의 거대한 범죄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규율에 따르는 것에 있다. 명령에 따라 폭탄을 투하하고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사람이 곧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뱅크시의 작품 활동들이 일부 불법 행위인 것도 부인할 수 없고,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을 당장 일축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뱅크시는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며 여전히 세계 곳곳에 자신의 메세지를 표현하고 있다. 뱅크시가 줄곧 던지고 있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기존 사회 구조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다양한 가치들이 혼재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16. 11. 19  |  Artists  |  SEO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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