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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 Black Panther (2018), 여성성이 강조된 히어로

some wind 2018. 12. 2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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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이 강조된 히어로

블랙 팬서 (Black Panther), 2018, 라이언 쿠글러 감독

 

 

 

남성성의 제국과 다름없는 현대 사회

블랙 팬서 영화를 본지는 꽤 되었는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이제야 리뷰를 쓴다. 영화 첫 장면? 으로 기억하는 영국 박물관 내부 장면은 아주 통쾌한 장면이었다. 저 사진에 보이는 촬영지는 실제 영국 박물관이 아니라 미국의 한 뮤지엄이라고 한다. 큐레이터가 실려 나오는 부분은 영국 박물관의 로비 모습이었다. 어쩐지 지난 1월에 다녀온 영국 박물관의 아프리카관에서 보지 못한 유물들이라 미처 보지 못했던 방이었나 했다.

힙하게 등장한 킬몽거는 유물의 발굴 장소와 시기를 설명하는 박물관 큐레이터에게 유물의 진짜 근원지와 "니들이 훔쳐간" 유물의 전시 유래를 설명해준다. 킬몽거가 강화 유리를 깨고, 머리에 쓰고 나간 마스크는 자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탈취해간 와칸다의 유물이다.

영화 속 와칸다의 유물 뿐 아니다. 영국박물관에는 전 세계의 온갖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반 이상은 탈취, 나머지는 영국 박물관의 뛰어난 홍보력에 발맞추어 기부된 유물일 거라 생각한다. 아메리카관과 잉카관에서 구역질을 느끼며 눈물이 났던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탈취와 정복, 그 비인륜적이고 가슴아픈 역사에 감정이입하여 속상했고 무기력함에 화도 났다. 직접 북미, 남미에 가서 힘들게 탐험하며 유물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런던의 한 뮤지엄 안에서 이 모든 것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기쁨도 위선적이라 느껴졌다. 들고있던 아이폰을 던져버리고 문명을 거부하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만 했지만, 곧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상황을 긍정하기로 했다. 2개월 후, 다시 만난 영국 박물관이 나오고 킬몽거가 유리를 박살낸 이 장면은, 그래서 내게는 너무나 통쾌하고 속이 시원한 장면이었다.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사회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요시하는 남성성이 강조된 사회다. 신체적 생리적인 특질로 인해 내면에서 생성과 소멸을 매달 경험하는 여성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가 본능적으로 발달해있다. 따라서 내면에서 양 대극의 특질을 통합하는 여성에게 진취적이고 모든 것을 분리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남성성은 때로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높은 빌딩들과, 거대한 성당들, 이 시대가 오기까지 쌓아온 문명의 사회적 성과는 이처럼 남성성의 거대한 발현이자 극에 치닫은 형국이다. 급속도로 발전하기 위해 내면, 외면의 여성성을 무시해 온 현대 사회에 블랙팬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여성성이 강조된 히어로, 블랙 팬서

블랙 팬서는 아프리카 와칸다 왕국의 왕이다. 공격은 부족을 지킬때만 사용하는 자비로운 왕이다. 왕의 곁을 지키는 전사도, 핵심 스파이로 활동하는 애인도, 비브라늄을 사용해 첨단 기술이 적용된 무기와 갑옷을 만들어주는 동생도 모두 여자다. 와칸다 왕국 사회 전반에 여성성이 지니는 힘이 깃들어 있다.

기존의 히어로에 비해서 통합과 소통, 공존을 추구한다.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무기는 남을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부족을 보호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용된다. 모든게 조화로울 것이라 여겨지는 아프리카 부족에서 공격성은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흉포함과는 다르다.

절벽에 떨어진 왕을 주워다 보살펴준 움바쿠 족장 또한 그들의 질서에 부응하고 보기와는 다르게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 마블 히어로 영화와 비교했을 때 스펙타클하거나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내면의 남성성을 발달시켜 통합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과, 내면의 여성성을 발달시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블랙 팬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반쪽만 발달해 삐걱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로 다가와 있을지 모를 대극의 통합을 멋지고 세련된 이미지로 보여준 마블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와칸다 왕국 신비로운 힘의 원천, 비브라늄

 

아프리카 부족의 삶을 상상할때면 평생 발전하지 않고 소소하게 조화를 이루고만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편견을 깨버리는 영화였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그렇지 않아 보일지라도, 기계과학과 테크놀로지 문명의 발전을 기준으로 한 우리의 관점이자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지, 아프리카 문명은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발전해 온 것일지 모른다.

오히려 공격과 정복, 성취의 남성성과, 통합, 조화 소통의 여성성이 조화된 정신적인 면에서는 훨씬 발전한 사회인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이를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눈에 보이는 하이테크놀로지 이미지로 보여준다. 바로 비브라늄이다. 와칸다 부족이 가지는 신비로운 힘의 원천이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에너지. 나는 비브라늄을 그들이 지닌 정신적인 힘이라고 생각했다.

와칸다 부족의 왕은 의식을 치를 때 잠에 들어 선왕과 조상들을 만난다. 마치 우리가 꿈과 신화를 통해 잠재된 무의식을 만나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던 정신적인 측면을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발달시켜 내면과 신체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아프리카 부족의 아름다움과 강인함이 비브라늄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여전히 소외된 문화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겠지만, 블랙 팬서 역시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하나의 문화만을 대표한다. 물론 누구도 블랙 팬서에게 아시아와, 여성과, 그 외 모든 소수 집단을 대표하라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런 히어로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소수 집단과 개인이 존재하고, 그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세상의 누구도 다른 이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한 말이긴 하지만, 블랙 팬서의 등장은 아직 우리에게 여성과 동양(이 단어도 서양의 이분법이긴 하지만)이라는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만을 암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을 서양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 또한 탈피해야 한다. 마블 히어로가 우리 세계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일깨워야 한다.

우리가 마블 영화를 즐기는 이 순간에도 지구에는 7천억이 넘는 개성과 잠재력과 특색이 공존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블랙 팬서를 더욱 즐겁게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8. 03. 25  |  Movie Review  |  SEO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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