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solution est en vous
CUBE (1997)
2020년 1월 1일이 된 기념으로 무슨 영화를 볼까 하면서 왓챠를 둘러보았다. 큐브는 어릴 때 학교에서 조금, 집에서 영화채널을 통해 조금 보았던 영화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큐브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공포가 어렴풋이 남아있다. 어쨌든 가장 첫 번째로 이 영화가 떠 있었다. 공포나 스릴러 장르는 혼자서는 절대 보지 않는 편인데, 오늘 따라 왠지 모를 용기가 더 이상의 고민 없이 영화를 선택하게 했다. 해가 달라져서 그런지 나도 좀 더 큰 것 같다는 어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씬이 사실 가장 잔인하고 징그러웠다. 큐브의 잔인함과 맹목성, 조심해야 할 수밖에 없는 갇힌 자들에 대한 경고 같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강렬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 타임라인이 길지 않고 오래된 영화라서 그런지(23년 된 영화) 섬세한 감정선이나 연출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육면체의 작은 방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공간과 창의적인 방식의 살인 부비트랩은 공포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특히 쇠로 된 얇은 줄이 방 한가운데로 곡선을 이루며 한 줄로 꼬여 방에 서 있던 사람을 저며 버리는 게 가장 참신하면서도 섬뜩했다.
등장 인물들은 각기 다른 직업과 성격들을 갖고 있지만, 그 나름의 개성들을 잘 모으기만 한다면 큐브에서 모두 함께 탈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늘 그렇듯이 감정이나 선입견, 타인의 시선, 처해진 상황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공포, 이기심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큐브라는 미로같은 공간은 우리 사회와 다를 바 없다. 예상할 수 없는 덫과 같은 사고들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이 곳, 알수 없었던 나의 잠재된 능력이 우연하듯 필연적인 계기로 드러나고, 내 주변 사람들과 시너지를 내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을 해결해나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곳, 이기심에 눈이 멀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 곳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이자 큐브 안이다.
가로 세로 각각 26개의 정육면체의 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큐브는 비교적 간단한 수열로 특정 규칙을 이루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한 두 가지 수열과 공식으로는 파악할 수는 없다. 정육면체라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모양도 아니다. 부비트랩의 살인 방법 보다 훨씬 섬뜩했던 건, 워스가 해준 말이었다. 이 남겨진 큐브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특정 세력의 이익, 또는 어떤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목적과 방향이 상실되었음에도 이미 만들었으니 작동시킨다. 사람들을 밀어 넣는다. 여기에는 해결도 실수의 만회도, 책임자도 없다. 그저 실행되고 무한히 반복될 뿐이다. 마치 인생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장난감에 던져진 우리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사회 또한 신의 설계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믿으면 적어도 마음이 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갇힌 사람들이 큐브 제작자들을 영원히 알아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신을 증명할 수는 없다. 왜 천문학적인 소수를 암산으로 인수분해 할 수 있는 지적장애인과 수학을 좋아하는 자신감이 적은 아이, 큐브 외피 디자이너와 경찰, 의사, 탈옥수가 함께 가둬져 있는 걸까. 다른 조합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들의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큐브의 탈출이 이들의 진정한 목적일까. 탈출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여러 희생을 겪으며 큐브를 헤매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이라면, 그 경험들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큐브 안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가. 왜 우리는 기쁜 일은 당연하게, 비극적인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냐고 생각하는 걸까.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큐브가 이 세계의 작은 축소판이라면, 우리는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는 한가.
"우리 안에 해답이 있다"기 보다는 해답을 찾기 위해 어떤 물음을 던지고 있는가를 묻는 영화 같기도 하다. 큐브(1997)는 일정하고 모두 똑같이 생긴 정육면체의 세트에서 저예산으로 찍은 영화라고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은밀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짧은 시간과 단순한 스토리로 어쩌면 큐브 보다 잔인하고 맹목적이며 무한히 변동하고 있는 세계의 섬뜩함을, 그리고 그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나 자신, 타인과 그 관계의 예측불가한 사건들을 강렬하게 드러낸 것은 인상적이었다. 낭만적으로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냉혹한 자연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진짜 눈에 보이는 것을 보라고 말하는 큐브 속 주인공들처럼.
큐브 CUBE (1997) | 2020.01.02 | SEOHEE
'winds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커 Joker (2019) 블랙 미러 코미디 (0) | 2019.12.04 |
---|---|
블랙 팬서 Black Panther (2018), 여성성이 강조된 히어로 (0) | 2018.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