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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Essay 3

고백

난생 처음으로 한국의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좀 머물다가 오후 7시 청년 미사에 가려고 했는데, 열람실이 5시까지였다. 급하게 연체료를 내고 정지되어 있던 대출 카드를 풀었다. 써야 할 페이퍼를 위한 책 한 권과, 지금 내게 또 한번 어떤 길잡이라던가 실마리를 던져 줄 수 있을 거라는 간절함이 깃든 책을 빌렸다. 도서관을 가는 길에 그 제목이 한 번, 파울로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서고에서 또 한 번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더 많은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라캉과 코엘료의 책을 집어들고 도서관을 나섰다. 사서에게 줄을 설 필요도 없는 참 편리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도서관 바로 옆에 위치한 성당에 약간 긴장한 상태로 들어섰다. 오후 7시까지 그냥 성당 안에 앉아 있어도 ..

Some/Essay 2019.12.15

시린 황홀함

주황빛으로 물든 낙엽을 더 붉게 물들이는 햇살이 가득한 시간을 마주하면, 아름다운 빛깔에 넋을 놓으면서도 코 끝이 찡하며 작은 슬픔이 스쳐 지나간다. 이 시린 황홀함은 타오르는 풍경을 눈에 담는 동안 차가운 바람처럼 머릿속을 어지럽히곤 한다. 어느 나무 수많은 잎들 중 하나도 붉게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해서일까. 시간이 흐르며 계절처럼 내 곁의 인연들도 한 잎 한 잎 뚝뚝 떨어져 스러지는 것을 아느냐는 자연의 냉혹한 물음인 걸까. 눈에 담는 것으로는 아쉬워 사진을 찍고 발을 돌려 갈 길을 가면서도, 마음 속에 들어와 소용돌이치며 흐트러진 낙엽들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새학기 첫 날 칠판에 가득 점을 찍고 연결한 후, 우리가 모두 하나의..

Some/Essay 2019.11.25

가족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활기 넘치고 복작거리는 집, 모두가 있는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혼자 길을 걷다 너무 외로울 때는 독신 거주자가 가장 많을 이 도시에서 나를 뺀 모두가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히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곧 적잖이 놀라게 된다. 내가 가장 벗어나고 싶었던 곳이 바로 그 집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집을 그렇게 떠나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었을까. 아파트는 죄가 없다. 『이상한 정상 가족』의 저자 김희경은 부모-자녀의 4인 구성 가부장적 핵가족 형태인 ‘정상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부여된 것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정상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화목하고 행복한 모습이어야만 하며, 남들이 모두 그렇듯이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는 ..

Some/Essay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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