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Essay

고백

some wind 2019. 12.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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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한국의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좀 머물다가 오후 7시 청년 미사에 가려고 했는데, 열람실이 5시까지였다. 급하게 연체료를 내고 정지되어 있던 대출 카드를 풀었다. 써야 할 페이퍼를 위한 책 한 권과, 지금 내게 또 한번 어떤 길잡이라던가 실마리를 던져 줄 수 있을 거라는 간절함이 깃든 책을 빌렸다. 도서관을 가는 길에 그 제목이 한 번, 파울로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서고에서 또 한 번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더 많은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라캉과 코엘료의 책을 집어들고 도서관을 나섰다. 사서에게 줄을 설 필요도 없는 참 편리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도서관 바로 옆에 위치한 성당에 약간 긴장한 상태로 들어섰다. 오후 7시까지 그냥 성당 안에 앉아 있어도 될까. 정문이 아니라 후문으로 들어선 것 같다고 생각한 찰나 흰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주일 미사 시간이 적혀 있었다. 단순히 내가 청년이니까 청년 미사를 들으려고 했는데, 오후 5시에도 미사가 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5시 5분이다. 급하게 성당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뒤를 따랐다. 

 

시간이 조금 지나 예배당의 3층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사는 이미 진행되는 중이었다. 성가대가 부르는 노랫 소리의 울림은 어쩐 일인지 나를 조금 더 긴장하게 했다. 뮌스터 대성당에서 들었던 찬송이 떠올랐다.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3층까지 가득찬 사람들에게서 섞일 수 없는 낯설음이 느껴졌다. 신부 뒤를 따라다니며 옆을 보좌하는 두 소년을 보며 역시 '남성의 종교'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반발심이 일기도 했다. 미사의 순서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입도 벙긋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일어설 때 일어서고, 앉으라고 할 때 앉았다. 나는 왜 이 곳에 있는가. 의문과 믿음 사이에서 경직된 몸이 느껴졌다.

 

오늘 미사는 고해성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성당에 오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고백이었기에,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부님은 고해성사에서 중요한 부분들과 방법, 내용에 대해 설명하셨다. 가장 먼저 성찰이 있어야 하고, 그 후 고백을 하며, 사제의 역할은 그에 대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보속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신부에게 상담 또는 면담을 하거나 질문 공세를 하는 것은 고해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용서는 사제가 아니라 신이 하는 것이다. 성찰이 부족하면 반성할 것이 적은 죄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된다. 이 또한 고해의 목적과는 동떨어져 있다.

 

성찰.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지독한 성찰이었다.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반성은 늘 교묘하고 이중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만들어 냈다. 멈추지 않는 생각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이 나고, 무엇이 나의 생각인지 구분할 수 없게 흘렀다. 그런 상태에서는 욕망과 감정과 공포와 고통이 하나로 들러붙어 나를 대신했다. 내가 없는 나, 내가 아닌 나는 실낱같이 미약하게 깜빡이는 '나'를 단칭적으로 인식하기에 언제나 숨가쁘다. 그 빛이 어둠에 묻혔을 때, 나는 늘 고꾸러졌고, 상처를 주고, 받고, 위험해졌다. 그래, 나는 빛이 꺼지도록 내버려둔 내 죄를 고백하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사의 시스템에 적응한 많은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아멘을 말하고, 할렐루야를 외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이 그것을 죄로 볼 것 같지는 않았다. 헌금은 하고, 성체는 받아들지 않았다. 신자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성체를 받을 수 없다는 문구를 어디에선가 보았다. 나는 성당의 시스템이 아닌 사회의 시스템에 물들어 있었다. 신은 이 것 또한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찬송이 끝나고,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예배당에서 빠져나갔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오랜 시간을 지난 사람들이 이미 신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억울해졌다.

 

미사 내내 솟아 올랐던 생각들과 쉴 틈 없었던 말씀과 노래가 끝나자 드디어 신 앞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았다.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저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했고, 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께서 주신 시련을 겪으며 결국 당신이 있는 이 곳에 왔습니다. 이 것도 제게 남은 시련이라면 겪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여전히 믿음과 불신 둘 다를 붙들고 있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 것이 지금 제게 필요한 방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저는 정말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멘. 

 

눈물을 닦고 성당을 나섰다. 눈물을 신의 응답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오늘은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밝은 사람들로 가득한 깜깜한 공원을 지나 집으로 갔다. 경직된 몸을 보살피려 가벼운 운동을 하고 그대로 방 바닥에 누웠다. 아직 단단하게 굳어있는 갈비뼈 사이로 조그만 틈이 생긴 것 같았다. 적어도 오늘은 내 죄에 당당했다. 신께 부끄럽지 않았다. 긴 한 숨을 내쉬고, 2월 입교식까지 몇 번 더 가 보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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