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Hillary Rodham Clinton)를 제치고 트럼프(Donald Trump)가 당선되었다. 여성을 향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타파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진짜 ‘유리천장’ 건물인 뉴욕 재비츠 컨벤션 센터(Jacob K. Javits Convention Center)에서 대선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힐러리 위의 유리천장이 더욱 높고 견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양성이 존중된다는 현대사회에서 여자는 아직도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일 뿐인 것일까?
최근에는 남성, 여성과 같은 이분법으로만 구분되지 않는 성들을 지칭하는 ‘제 3의 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생물학적 성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범주의 성별을 사회적으로 인지하고 인정하는 추세다. 생물학적 성별로는 남성∙여성∙인터섹스, 성 정체성의 분류로는 트랜스젠더(사회적∙심리적 성별을 생물학적 성별과 다르게 여기는 사람)∙시스젠더(트랜스 젠더와 반대)∙젠더퀴어, 성적 지향의 분류로는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 범성애 등으로 구분되고 연애 지향, 성적 특성 질문 등 더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분류기준들이 있다.
지금 뉴욕의 국립현대미술관 MoMA(The Museum of Modern Art) 2층에서 전시되고 있는 낸 골딘의 사진은 1970-80년대에 바로 이런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 자신의 내밀한 삶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침대에 있는 낸과 브라이언(Nan and Brian in Bed)'는 뉴욕 MoMA의 전시 제목이기도 한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성적 종속에 대한 발라드)> 사진집의 표지에 실린 사진이다. 낸 골딘 본인인 여성의 표정에서 서로 소원해진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드러나는 이 사진은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모습들과 그들의 세밀하고 솔직한 감정들을 담은 낸의 사진들을 대표하고 있다.
11살 때 언니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은 낸은 언니와 같은 ‘잠재적 자살위험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이 충격을 견디기 힘들었던 낸은 14살 때 가출을 감행하고, 16살 때부터 드랙 퀸(Drag Queen, 여장 남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함께 어울리던 드랙 퀸, 레즈비언들, 마약 중독자들, 에이즈 환자들과 같은 1970-80년대 언더 문화를 대표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낸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그녀의 삶에 크게 자리잡았다. 언니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 낸에게 가족과도 같은 친밀함을 나눈 이들을 카메라로 ‘기록’하겠다는 의지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낸 골딘은 “나는 그들(사진 속 인물들)을 처음부터 제 3의 성으로 생각했지 여장한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나는 나 자신을 양성애자(bisexual)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양성애자 또한 그 자체로서 다르게 존재하는 하나의 리얼리티로서 봅니다. 각 개인들은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많은 종류의 정체성이 한 사람 안에 존재하죠. ”라고 말했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페르조나(사람들이 외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쓰는 가면과 같은 외적 인격)에 대응하여 무의식에 존재하는 내적 인격인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이 개념은 남성에게서는 여성적 특성을 가지는 아니마, 여성에게서는 남성적 특성을 가지는 아니무스로 발현된다.
칼 융은 의식의 중심인 자아와 달리 그 사람의 전체 인격, 전체 정신의 중심인 ‘자기’가 존재한다고 말하며, 모든 사람은 무의식을 의식화(깨달음)하여 자아가 ‘자기’로 가까이 가는 자기 실현(개성화 과정)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이런 자기 실현의 과정에서 무의식의 보다 깊은 통찰에 이르게끔 하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생물학적 성별인 남성과 여성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남성적인 면을 또는 여성적인 면을 외부적으로 더 많이 표출하고 자신이 느끼는 성별을 받아들이며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카메라에 대한 거리낌이 전혀 없다. 진솔한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파티나 클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착각하게 한다. 게이나 레즈비언과 같은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기피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낸의 사진들은 아주 파격적으로 다가오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그들에 비해 내면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낸의 사진들은 1979년 록 뮤지션인 프랭크 자파(Frank Zappa)의 생일 파티에서 연 전시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단지 사진을 걸어 둔 것이 아니라 슬라이드 쇼와 자신이 직접 선곡한 음악으로 사진이 자동으로 넘어가게끔 하는 특이한 전시 방식을 선택했다.
사진의 정적인 면을 타파하는 것 같은 슬라이드 쇼 형식은 관람객의 능동적인 관람이 아닌 수동적인 관람을 유도한다. 이는 무의식 속의 단편 단편의 기억들이 반짝하고 떠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면으로의 여행에 초대한다.
낸은 친구들의 키스나 섹스같은 내밀한 행위들을 자주 사진에 담았다. 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은 낸의 존재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들의 행위에 몰두하고 있으며 낸의 시선은 관찰자나 외부인이라기 보다는 내부인의 일상적인 시선과 가까워 보인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낸의 사진들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낸이 아주 사적인 사진들을 공적인 자리로 끌어내어 작품으로 공표했기 때문이다. 낸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자신의 일기라는 표현을 썼다. 솔직한 일상과 비밀을 담은 일기처럼 꾸밈없이 드러나는 낸의 사진들은 마약을 하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 다른 성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임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 장면들과 다를 바없어 보인다.
낸은 그들에게 어떠한 경계나, 특이한 상황, 특정 분위기나 메세지를 담아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뿐이다.
낸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사진 작가들 중에 친밀한 사람들의 솔직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낸 샐리 만(Sally Mann)이라는 작가가 있다. 콜로디온 습판(wet collodion process, 필름 대신에 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콜로디온 용액을 바른 유리판을 넣어 촬영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깨지고 금이 간 렌즈, 구식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등 고전 사진 형식을 고수했던 샐리 만은 가족, 고향의 대지, 죽음과 같은 주제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해 나갔다.
샐리 만은 버지니아의 오두막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아이들 삼 남매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촬영한 <직계 가족(Immediate Family)>이라는 작업으로 유명해졌다. 샐리만의 아이들은 벌거벗고 호수와 오두막 주변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았고, 그 모습들은 미디어에서 양산해냈던 천진난만하고 밝아보이기만 한 아이들의 이미지와 먼 거리감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이들의 상처와, 시기∙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 어른들의 시각으로 선정적으로 보여진다며 비판 받기도 했던 모습들은 꾸며지거나 연출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샐리 만의 사진은 인정하지 않고 있던, 아이들 본연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낸과 샐리는 모두 아주 친근하고 사적인 관계 - 친구와 가족들을 사진에 담았다. 오히려 가깝기 때문에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낸과 샐리는 사진 속 인물들의 더 솔직한 모습을 우리에게 내부자의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이들이 가진 정체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낸은 레즈비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나갔다고 말했다. 샐리도 아이들을 촬영하고, 후반에는 병에 걸린 남편을 촬영하며 자신의 삶과 인간에 대한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해 나가고 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카메라 속 시선은 아주 관점의 구속도, 요구도 없으며 자연스럽다. 이런 점이 남과 다른 나를 두려워하고 비교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사회에서 살고있는 우리에게는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낸 골딘의 사진에는 거울이 자주 등장한다. 거울 속의 낸의 시선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향하고 있다. 주변의 다른 인물들을 렌즈를 통해 바라보았던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거울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주 바라보았던 걸까.
낸은 특별한 정체성으로 대표되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관계와 서로 다를 수 있는 느낌들, 다양한 정체성과 자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낸의 사진이 80년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아직도 조금은 부담스럽고 파격적으로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서로의 차이를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일 것이다.
2016. 11. 13 | Artists | SEO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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