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복잡하고 다양해진 시대를 살아가며 하루하루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고 피곤함을 느끼는 현대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집 안에 쌓아두던 물건을 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들로만 단순하고 가볍게 살고자 하는 이 생활 양식은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 미니멀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부른다. 라이프스타일 뿐만 아니라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는 건축, 패션, 디자인, 일상 용어 등 많은 부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최소화(minimal)’한다는 뜻의 미니멀리즘 예술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1960년대 미국의 몇몇 예술가들은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회화가 다른 무엇인가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작품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도록 예술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등장하여 발전하고 있던 시기였다. 잭슨 폴록은 액션페인팅을 통해 자신의 직관적인 행위로 인한 물감의 흔적으로 캔버스를 채웠고, 바넷뉴먼과 마크 로스코는 거대한 평면 캔버스로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드러내었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어떤 장면이나 스토리와 같은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순수한 평면의 예술 작품으로 작동하는 회화를 지향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생성되는 환영과 구성에서 완전히 탈피할 수는 없었다.
가장 본질적인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캔버스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 예술가 도날드 저드는 쇠로 육면체의 기본적인 단위를 만들어 배열하였다. 그 단위 조각들은 이전의 회화나 조각처럼 벽에 걸리거나 받침대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바닥이나 벽 자체에 놓여 예술작품이 가져왔던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공간에 존재하게 되었다. 로버트 모리스 또한 기하학적인 도형 조각들을 공간안에 배열하였다. 관객들은 더이상 한 곳에 서서 또는 주위를 맴돌며 작가에 의해 고정되어 있던 작품의 구성을 보는 것이 아니다. 직접 그 공간 안에서 작품들과 관계하며 관람객의 위치나 조명, 시간,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현실 공간에서 직접 만나게 되었다.
이처럼 미니멀리즘 예술가들은 그림이나 조각이 아닌 ‘사물’들을 예술 작품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댄 플래빈은 그 중 형광등을 작품에 활발하게 사용한 작가이다. 빛나는 형광등은 받침대 없이 벽에 매달려 빛으로 형성되는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냈고, 그저 하얗기만 하던 전시장 벽면을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들이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예술가들은 가장 중요한 예술의 본질만을 남겨두고 모든 것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붓질이나 조각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표현적인 요소나 개입을 최소화하였고, 작품을 구성하는 개념과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또한 미니멀리즘 예술은 관객이 직접 작품과 관계하며 경험하고 느끼면서 완성된다.
미니멀리즘 예술이 등장한 이 후, 현대예술은 사물에서 확장되어 대지를 이용한 대지 미술, 행위로 표현하는 퍼포먼스 예술, 다양한 구조물들로 아이디어를 형상화하는 설치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로 확장되었다. 예술의 범위와 가능성이 무한대로 늘어난 셈이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의 장르와 범위를 넘나들며 관객들의 직접 경험으로 완성되는 작업을 하는 현대 예술가가 있다.
바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다. 덴마크 출신인 엘리아슨은 물에 녹는 수용성 염색물질로 독일과 노르웨이, 로스앤젤레스와 도쿄 등 도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들을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갑작스레 변화한 눈에 띄는 물 색깔로 인해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반응들을 위해서 였다.
그런가하면 증기를 내뿜는 기계를 설치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짙은 안개를 만들기도 했다. 실내에서는 원형으로 안개를 만들어 선명한 무지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테이트 모던에서는 작열하는 거대한 태양을 띄우기도 했다. 날씨와 기후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우리에게 예민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요소들을 기계적 매커니즘을 통해 작품으로 옮겨낸 것이다. 현실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올라퍼의 스튜디오는 ‘현실생산장치(Reality Producing Machine)’라는 이름이 붙었다. 관객들은 그 만들어진 환경 속을 걸어다니고 숨쉬며 빛, 온도, 색깔과 습도 등을 경험하고 느끼며 감각한다.
강렬한 원색의 투명한 판들이 세워져 미로를 만들고 있다. 다양한 색깔의 각각의 판들은 서로가 겹쳐지고 투영되며 수많은 색들을 만들어내고, 관객의 걸음걸음에 따라 새로운 색채 변화들을 보여준다. 관객들이 직접 미로 속으로 걸어들어감으로써 작품이 작동하는 셈이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철사에 매달린 원형 블루라이트 두개와 옐로우 라이트로 이루어진 모빌은 다른 가지에 설치된 환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바닥을 비춘다. 원형 불빛들이 계속해서 위치를 바꾸어 바닥에 비춰지는 조명 빛과 모빌의 움직임, 환풍기의 바람 또한 하나 이상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엘리아슨은 또한 착시를 이용해 시각적 감각의 낯선 변용을 시도하였는데, 베르사유 궁전에 전시되었던 <Your sence of unity>는 좁은 각도로 설치된 두 개의 거울로 가까이 가면 보이는 빛나는 원형 고리의 전체 연결이나,
피라미드 형태의 거대한 거울을 설치하여 위를 올려다보면 사방이 한 번에 보이는 특이한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관객이 직접 참여하며 감각하고 체험해야만 제대로 관람할 수 있고,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빛과 자연에 많은 영감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구조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빛과 자연과 같이 그가 활용하는 다양한 환경과 설치들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도달하는 도구인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 것 같아 보이는 현대 예술을 팜플렛이나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끼워맞춰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앞으로 걸어들어가서 온몸으로 느끼는 올라퍼의 작품들은 예술을 통해 감각을 깨우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즐겁고 쉽게 체험하게 해준다. 현대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세상의 모든 가능성>전시를 2017년 2월 2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올라퍼의 작품을 통해 더 활기차고 생생한 일상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7. 01. 16 | Artists | SEO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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