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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순수하고 생생한 즐거움,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some wind 2019. 12. 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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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sunbather, 1966

당신은 언제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몇년 전, 경상북도 청도의 시골 길을 매일 아침 자전거로 누비게 된 적이 있었다. 매일 가는 똑같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구름의 양과 햇빛의 농도, 바람의 세기와 온도에 따라 매 번 낯설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맞는 바람과 햇살, 신선한 공기와 주변에서 예기치 않게 등장하는 오리 가족이나 백로와 같은 동물들은 각각의 색깔을 입은 다채로운 하루의 시작을 만들어주었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페달을 밟으며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살아있었고,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생존하는 가장 영향력있고 인기있는 작가들 중 한 명인 영국의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생생한 살아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1937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를 졸업한 데이비드 호크니는 1964년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게 된다. 영국의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달리 연중 온화하고 쾌적한 날씨에 매료된다. 

 

 

A bigger splash, 1967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1966

 

특히 로스엔젤레스 곳곳에 있는 풀장을 채우는 물, 그곳 사람들의 삶과 공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호크니는 현재 호크니를 가장 유명하게 한 “텀벙 A bigger splash, 1967”과 같은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1966”에서 풀장 벽에 기대 선 남자 뒤로 투명하게 일렁이는 물이 보인다. 시시각각 쉬지않고 변화하며 많은 것들을 비추고 또 금세 흩어지며 일렁거리는 물의 표면은 매력적인 사람과 풍광을 담은 호크니의 두근대는 심정을 대변하는 듯 하다. 

 

사실적이면서도 단순한 직선들을 이용한 독특한 표현법으로 호크니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갔다. 단순하지만 선명한 색깔과 형태들은 호크니의 그림에 비교적 좁은 공간감을 주는 반면에 강렬한 인상을 자아내고 있다. 호크니는 생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가 지금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들 위주로 그림을 그렸다. 햇빛에 반사되는 물결이 선명한 선으로 드러내 보였고, 아주 단조롭고 적막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강렬한 파장을 일으키는 물보라로 해체되는 순간을 대범하게 표현했다.

 

 

Beverly Hills Housewife, 1966

 

이렇게 호크니는 자신이 지금 이 순간 감각하고 느끼는 현실, 주관적으로 재 탄생하는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관심은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사진 작업으로 연결된다. 호크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진이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해주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을 믿는다. 그러나 원근법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없애고 현재의 시점을 다양화 함으로써 사진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좀 더 흥미로워 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카메라의 기계적 과정을 거친 사진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지만, 한 장의 사진은 단일한 원근법을 가진 하나의 시각만을 보여줄 뿐이다. 인간의 눈이 닿는 시시각각의 모습들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피카소에 매료되어 입체주의를 실험하고 연구한 호크니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서도 입체주의적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Merced River, Yosemite Valley, Sept.1982
Nicholas Wilder Studying Picasso. Los Angeles 24th March 1982

 

 

그는 현실의 부분 부분을 모두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큰 이미지를 만들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용하여 사진의 흰 여백이 그대로 남아 있는 포토 몽타주(Photo Montage) 작업은 사진이라는 기계적 과정 또한 완전히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피카소가 그린 사람의 모습처럼 얼굴과 몸, 뒷 편의 화분까지 각각 서로 다른 각도와 시각의 모습을 한 번에 보여주고 있다. 

 

nathan swimming, 1982

 

호크니는 완전한 객관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서서 무엇인가 바라보는 그 순간에 진실한 세계가 드러난다. 따라서 주관적인 시각들만 존재할 뿐이며, 이러한 주관적인 시각들도 어느 곳을 어디에서 언제 보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호크니가 바라보는 세상과 자연, 인간은 변화무쌍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Bigger Trees Near Warter, 2007

 

2000년대에 들어서 호크니는 다시 고향인 영국의 요크셔로 돌아왔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연중 따뜻한 날씨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지만, 영국에 돌아와서는 날씨가 변화하며 ‘봄’이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계절의 변화라는 사건에 감명받은 그는 요크의 풍경을 무려 50개나 되는 캔버스 각각에 그려 하나의 큰 그림으로 합쳤다. <Bigger Trees Near Warter>은 높이가 4.5미터, 너비가 12미터에 이른다.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바깥에서 풍경을 직접 바라보며 각각의 부분을 그린 호크니는 좁은 작업실에서 50개나 되는 캔버스들을 모두 합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전체의 모습을 담은 디지털 사진을 찍어 그림들과 비교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회화의 수단이나 방법에 여러 차원의 이미지가 혼재된 6주간의 결과물은 크기도 크기지만 호크니의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그대로 담겨 있다. 거의 실물 크기로 보이는 하나하나의 나뭇가지들은 끊임없이 변하는 시간과 빛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My Parents, 1977
Arcadia Fletcher and Robin Katz, 2002

 

“나는 공간에 매우 관심이 많다. 특별히 두 인물간의 공간. 많은 사람들이 제거해버리기를 원하는 그런 공간 말이다. 모든 창조물은 통합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하는 호크니는 부모님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을 그려 합치거나 하는 초상화작업도 즐겨 했다. 작년에는 82점의 초상화를 런던에 있는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 갤러리에 전시하기도 했다. 전문 모델이 아닌 호크니와 개인적으로 알고 있거나 주변의 인물들을 그린 82점의 초상화는 단 2년만에 제작되었다고 하니 그의 식지 않는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호크니의 초상화들

 

호크니는 초상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들과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연이 가지는 변화무쌍함을 사람들에게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호크니를 대표하는 강렬한 색감과 인물들의 개성으로 가득한 초상화들은 77세의 나이를 잊어버리게 한다.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도 즐겨 사용하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그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데 호크니의 홈페이지에는 그 디지털 그림들도 모두 전시되어 있다.

 

 

8 iPhone Drawings, 2009
3 iPhone Drawings, 2009

 

푸른 색의 싱그럽고 선명한 생생함, 우거진 자연의 에너지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호크니의 그림은 지금 이 순간을 감각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호크니는 “이것은 언제나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여줄 뿐이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담아내려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지금이다.” 라고 말한다. 예술가의 눈으로, 그림으로 우리는 다른 현실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감각하는 우리, 나 자신으로 보는 세계는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당신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그의 작업실
In the Studio, December 2017, 2017


2017. 02. 06  |  Artists  |  SEO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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